2023. 1. 19. 03:47ㆍ개인적인 생각
한국 사람들이 자존감이 낮을 수 밖에 없는 이유 - 내가 나일 수 없는 사회 (feat.집단주의,조직문화)
+ 사람들이 가면 쓰는 이유, 가식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 자존감 낮아지는 과정, 자존감 낮아지는 원인, 상처의 원인, 자존감 낮은 이유, 눈치보는 이유, 내 의견 내 주장 펼치기 힘든 이유.
전부 집단주의 + 편협한 시야가 만들어낸 악순환이다.
가면을 쓰지 않고서야 살아남을 수 없는 한국사회,
지금부터 그 과정을 뜯어보도록 하겠다.
***이 글 전체에서 지칭하는 '한국사람, 한국인'은 모두가 아니라 '대부분'을 지칭합니다.
그렇지 않은 한국사람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이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사람)
***어떤 반박의 댓글도 환영합니다.
우리 시야를 넓힙시다.
한국 사람들은 민족의식이 강하다.
역사에서 장점으로 작용한 부분도 많았다.
중요한 건 그걸 개인이 개인에게, 그것이 집단이 개인에게-로 부적절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의 시야는 편협하다.
그러면서도 다른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다름'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다르다'는 것은 전부 '틀리다'는 것이다.
물론 범접할 수 없는 '다름'은 '다름'으로 인정한다.
예를 들면 인종이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고 말하지 않듯이.
하지만 '성격', '성향', '취향' 등등은 '다름'을 '다름'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당신도 분명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혹시 난 아니야, 난 안 그래, 에이 그래도 난 다르다는 거 꽤 인정해주는 편인데? 난 무작정 틀리다고는 하지 않아. - 라고 말하는 중인가?
그렇다면 더욱 내가 말하는 '대부분'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지금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기에 인정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잘못하고 있고, 그로 인해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엔 두려운 것이다.
인정해야지 변화할 수 있는데 인정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못하고 사고방식이 그렇게 고여있는 것이고, 그 안에서 꼬여있는 상태가 된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어서 지금 '대부분'이 한국인들이 고정관념에 처박힌 채 다름을 틀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자신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변화가 없고 늘 같은 자리에 고여있는, 결국에는 '꼰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어느새 꼰대짓, 꼰대생활하고 있더라, 어릴 땐 내가 요즘애들이었는데 늙어보니 내가 '요즘애들이란' 하고 있더라- 생각해 본 적 없는가?
그렇다면 더욱 심각하다.
원래 진짜 꼰대는 자기가 꼰대인 것을 모른다.
그리고 자기가 꼰대인 것을 알아도 그대로 꼰대로 사는 진짜 꼰대도 있다.
그냥 꼰대소리 듣기 싫어서 제 입으로 먼저 말해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분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대부분'을 이야기한다.)
이 '꼰대'라는게 대체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가?
자기 말이 다 맞고,
자기랑 생각이 다른 걸 인정하지 않고,
여러가지 관점이 아니라 하나의 틀에 박혀 생각하고 그걸 남들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다 싫어하는 꼰대짓을 자기 스스로가 하고 있다.
진짜 알아챘다면, 진즉에 그만 두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러는 것도 싫지만 내 스스로한테 혐오감이 드는 게 당연하니까.
자, 나는 MZ세대 이신가?
나는 요즘애들이신가?
그래서 꼰대가 아니신가?
대놓고 강요하는건 꼰대라고 불리지만,
암묵적인 강요는 꼰대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배척'한다.
그리고 끼리끼리 논다.
그 '끼리'는 '집단'이 되고, 독립적이거나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은 '개인'이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집단주의자'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들처럼 눈치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인주의자'를 무작정 '이기주의자'로 통칭하고 만다.
그러는 '집단주의자'들이 가장 이기주의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모른 채.
자신들은 항상 눈치보는 사회에서 비굴함과 억울함을 감당하며 지내왔고,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항상 불평불만하곤 했다.
그런데 눈치보지 않고 개인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저자?
얄밉다.
배아프다.
그래서 배척한다.
그리고 그 배척은 결국 그 '개인'을 '왕따'로 만들고, 그 사회는 '다수'인 '집단'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회사'는, '학교'는 결국엔 '집단'이고 결국엔 '소통'해야 업무를, 학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개인'은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또는 그저 미움받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눈치'를 보아야한다.
이 과정에서 '나', '나의 생각', '나의 의견', '나의 주장', '나의 권리', 즉 '나의 자아'가 사라진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전부 배척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나의 자아'는 존중받지 못하고 항상 배척당한다.
>> 자아 존중감, 자존감이 낮아지는 핵심 요인.
'나의 의견'은 '틀림'으로 간주되어 배척의 대상이 된다.
'나의 권리'는 '이기심'으로 간주되어 배척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배척의 대상은 결국 미움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서 '소속'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그래서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생존'에 위협이 된다.
>> 진화심리학적 관점, 인간은 집단적으로 생존해왔기 때문에 고립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나로서 존재할 때, 미움받고 배척당하니까, 그러니까 사회에서 '나'일 수 없는 것이다.
#가면쓰는이유
#가면쓰는사회
결국 소속되기 위하여, 또는 돈을 벌기 위하여, '개인'은 사라지고 '집단'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그 '집단'의 '입장'을 강요받는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각자의 입장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그 입장차이를 좁혀나가는 것이 '소통'이다.
하지만.
편협한 시야에 갇힌 한국인들은 '대화'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소속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맞추어야'만 한다.
그들이 옳다고 하는 것, 나도 맞다고 해야하고,
그들이 높다고 하는 가치, 나도 추구해야하고,
그러다보니 '나'의 중심이 '나'가 아니라 '그들' 곧 '타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억지 이타주의자'가 되고,
내가 나일 수 없는 사회에서 가면을 써야하고,
가면을 쓰기에 힘겹게 버티고 있는데,
그러니까 가면쓰지 않은 너, 왜 너는 가면 안 써? 나는 가면 써서 이렇게 힘든데! 불공평해! 왕따시키자!
그렇게- '개인'이었던 나도 '집단'이 되어 또 다른 '개인'을 괴롭히는 악순환에 이른다.
이것이 한국의 집단주의, 조직문화이다.
요약하면,
나와 다르면 틀리다고 주장하고,
주장하기엔 자신이 나빠보일까봐 또는 욕 먹을까봐, (자신도차도 미움받기 싫어하면서) 암묵적으로 조직에서 제외시킨다.
그렇게 '고립'된 개인은 '생존'을 위해 '조직'에 자신을 끼워맞춘다.
하지만 '조직'에 '자아'는 들고갈 수 없다.
결국 개인은 '자아'의 모든 욕구와 권리, 주장을 전부 '무시'한다.
'자아'는 상처입고, 존중받지 못한다.
그래서 자존감(=자아존중감)이 낮아진다.
그리고 개인은 결국 '집단화'된다.
그리고 또 다른 '개인'을 발견하면, 그 '개인'에게 '집단적 사고'를 강요한다.
왜? 자신은 상처받아가며 자아를 버리고 집단이 되었는데,
상처 하나 받지 않는 저 개인이 얄밉다는 이유로.
자기가 선택해놓고 그게 억울하다는 이유로.
맞다, 선택은 자기가 했지만 억울하다.
자기도 그 집단적 내리악의 피해자니까.
그리고 그렇게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생기고,
그 피해자는 집단화 되어 또 가해자가 되고,
그렇게 가해자가 늘어나고,
그 많은 가해자들은 더 큰 집단이 되어 '개인'을 위협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사회(유치원, 학교) 조차 집단이다.
그 집단주의에서, 자존감 낮은 부모에게 교육받은 자존감 낮은 아이들은 '배운대로' 행동한다.
여기서 '배웠다'는 '부모'를 뜻하고, 그 '부모'는 이미 집단주의에 썩어져 있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손상된 자존감은 결코, 죽어도, 무슨 짓을 해도 원상복구 될 수 없다.
정말 미친듯이 노력해도 '온전히 나를 사랑'하지는 못한다.
왜? 자아가 다 생성되기도 전에 상처입었는데 그게 어떻게 온전해질 수 있겠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부모가 잘못한게 아니다.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 고인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뿐이니까.
결론만 따지면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끼리 뭉쳐서 가해자가 되어 또 피해를 주는 꼴이다.
이 악순환, 내리악, 사회악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제발 인지해야한다.
그래야 빠져나올 수 있다.
그래야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야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
'편협한 시야'하나가 이렇게 큰 사회악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자기가 누리지 못한 권리 남이 누린다고 미워하는 '좁은 인격'들이 모인 집단이 바로 우리의 직장과 학교라는 사실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선택지는 두 개다.
1. 그들이 뭐라하든, 나를 미워하든, 내가 고립되든 난 내 할 일 하는 개썅마이웨이.
2. 도피.
1번의 경우, 타고나야한다.
보통 양육환경에서 경제적 또는 정신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부모 밑에서 자라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부유할 수 있어도, 정신적으로 부족함이 없기란 불가능하다. (결핍이 없는 인간은 없다)
부모 자신은 정신적으로 부족함이 있어도, 그것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자신을 개혁해나간, 넓은 시야를 가지고 '존중'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부모는 있다.
그런 부모는 아이에게 '존중'을 먼저 가르친다. 그래서 아이는 습관적으로 자아를 존중하게 되고, 이후 사회에서 상처입더라도, 부모에게서 배운 '존중'이 자아를 보호한다.
그리고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인간이기에 남도 존중할 수 있게 되고, 남이 틀린 게 아니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럴 수도 있구나!'하며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1번? 우리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2번? 돈 안 벌건가? 학교 안 갈건가?
이 경우 조금이라도 여유있는 집안은 '유학'등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우리같은 서민들이 당장 외국을 갈 여건이 되는가?
당장 먹고 살 돈도 없어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가난한 직장인에게 도피처 따위가 존재하는가?
없어서, 그럴 수 없어서 결국 '집단'이 되거나, 그게 죽기보다도 싫은 사람은, 아니 그게 불가능한 사람은 집에 고립되든지, 소통이 필요없는 단순노동을 하던지, 아니면 혼자 창업을 하든지 어떻게든 살 길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집단이 되지 않은 개인의 경제생활은 정말 고독하고 힘들다. 어떻게 '혼자서' 돈을 벌겠다는 것인가.
애초에 '한국'에는 선택지가 없다.
왜?
원인이 '한국'인데, 고인 물에서 썩지 않은 고기, 싱싱한 고기가 어떻게 싱싱한 채로 살아남겠는가.
한국에서 살려면, 웬만한 멘탈, 웬만한 자존감, 웬만한 독기 없으면 같이 썩어진다.
같이 썩은 물에 고여 싱싱했던 고기도 썩어지지 않으려면, 한국을 벗어나는 길 밖에는 없는 것이다.
내가 호주 워홀을 선택한 이유도 이것이다.
일단은 나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는데 충분히 시야가 좁지 않은가?
그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편협하다는 얘기인가?
첫 번째로 내 시야부터 넓혀야 했다.
두 번째로 편협하고 고여있는 한국인들에게서는 배울 게 없다. 내가 더 썩어질 뿐.
나도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도 나를 존중하는 깨끗한 물로 나가는 수 밖에 없다.
자 그렇다고 우리 편협한 한국인들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
보았다시피 선택지가 없지 않는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인물로 향한 물고기들, 그들도 처음에는 싱싱한 고기였다.
나는 깡다구는 없어서 개썅마이웨이로는 못 살고,
그렇다고 저 더러운 물에 같이 엮이긴 싫으니,
그래도 나에겐 도전정신이라도 있으니, 큰 물로 나가보려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워홀 갈 돈'이 있나보네 할 수도 있다.
아니? 난 지금부터 '소통이 필요없는 단순노동'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한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빠듯하기 때문에 1인 지식기업을 하는 것이다.
이 역겨운 집단주의, 조직문화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나의 자존감을 손상시킨 원인이자, 다시는 회복시킬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 같다.
1. 인정하지 못하고 불쾌해 함
2. 인정하고 깨달음
인정하지 못하면,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뭐 그걸 욕할 순 없다.
그게 틀리다고도 할 수 없다.
자신의 선택이기에.
하지만 자신이 선택해놓고 억울하다며 '가해자'가 되지는 않았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남을 '틀림'으로 판단하고 '배척'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 말하고 싶지만, 애초에 1번인 사람들은 여기까지 닿지 못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여러분은, 이 글에서 말한 '대부분의 한국인'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인정하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매운맛 돌직구 글이기에.
멋지다. 정말.
그 힘든 '인정'을 해내고 '변화'를 도모하는 당신.